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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 정상에는 둘리가 산다”…마산YMCA 창원 역사⋅문화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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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i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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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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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9일,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시민특강 진행
- 중생대에서 가야시대에 걸친 지역 역사문화 설명
- 개발논리에 치우친 지역 인식과 실태 꼬집어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0cf9af3f53841464.jpg)
(마산YMCA는 29일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특강을 대면과 온라인으로 가졌다./촬영=이빈기자)
마산YMCA가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특강을 열고 지역 내 유적과 문화재의 소중함과 보존 필요성을 되짚었다.
29일 마산YMCA 청년관에서 열린 아침논단에서 김주용 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우리가 미처 모르거나 지나쳐온 지역의 유적과 문화재를 재치 있게 설명하면서 방치되고 훼손되 가고 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지자체, 시민사회, 언론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0d1ce2a5e1422003.jpg)
(무학산 정상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을 창원대박물관에서 실측하고 있다./출처=창원대박물관)
“무학산 정상에는 둘리가 살았습니다”
김 실장은 2014년 직원들과 등산을 하며 발견한 공룡발자국 이야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등산 중 직업병이 발동해 옛 암각문이나 비석을 찾다 중생대 호숫가 물결 화석인 연흔 무늬를 발견하고 혹시나 하고 발자국 화석을 찾다 결국 포기한 채 도시락을 먹을 만한 너럭바위에 오른 순간 초식공룡 발자국 10여 개를 발견한 것. 그것도 해발 761m 정상에서 말이다. 2008년 정병산에서 첫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가까운 대암산, 마산 제2금강산 등에서 잇달아 발견됐으니 창원은 1억년 전 둘리들의 천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적과 문화재는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의 무관심과 선입견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0d35f17409175190.jpg)
(창원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시대 뗀석기를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이 설명하고 있다./촬영=이빈기자)
“창원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창원의 역사에는 공룡 발자국처럼 비어 있던 페이지가 많다. 그 이유를 김 실장은 취약한 지역의 역사문화 기반체계와 전문인력 공백에서 찾고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숙련된 연구와 발굴 경험이 있는 인력이 지역에 없어 발굴은커녕 그동안 조사된 유적 내에서도 유물이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주남저수지 합산패총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을 확인하기 전까지 창원에서 신석기시대는 공백이었다. 구석기시대도 2014년 목포에서 전문인력을 초청해 가능성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오랜 조사 끝에 2021년 동읍 용잠리에서 구석기시대 중·후기로 추정되는 석기를 채집함으로써 비로서 공백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눈을 부릅뜨고 땅을 파 내려가는 지역의 역사문화 전문가들 존재하기에 언제부터 창원에 사람이 살았나요 물으면 이제 구석시시대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0d9dceb2a4260815.jpg)
(진동에서 발견된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 지석묘 유적을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이 설명하고 있다./촬영=이빈기자)
근대산업화의 도시 창원,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창원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공업단지, 계획도시 말곤 선뜻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를 이끈 고장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창원에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 가야 시대 유적과 고분군이 가까운 진동과 현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은 몇이나 될까? 김실장은 창원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현동에서 발굴된 가야 최고의 명품 배 모양 토기와 계획적으로 묘역을 조성한 진동리 청동기 지석묘 유적을 꼽았다. 원형 또는 네모반듯하게 호석(돌담)을 두른 지석묘는 규모와 형태면에서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 당장 물에 띄워도 좋을법한 배 모양 토기는 섬세함과 제작기술에 있어 당대 최고의 토기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야철 유적이 발견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살던 창원. 우리 고장 고대인들은 이미 지금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0dbc5565f6803355.png)
(개발논리에 묻혀 훼손된 창원지역 문화재 사례/출처=창원대박물관)
“과연 우리는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까?”
어릴 때 우리는 문화재를 아껴야 한다고 배웠고 숭례문이 불탈 때 모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내 땅에 문화재가 발견된다면 과연 같을까? 김 실장은 질문을 던졌다. 문화재 주변 반경 200~500m 이내의 개발행위는 철저히 제한받는다. 또 문화재가 발견되면 땅 주인에게는 발굴의 의무가 주어지고 유물은 국가가 가져간다. 사랑의 대상이 나쁜 존재로 돌변하는 것이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경주, 김해뿐만 아니라 창원 다호리와 진동에서도 유사한 뼈아픈 진통을 겪었다.
김 실장은 경남 곳곳에서 개발과 성장이 최우선 되면서 많은 유적과 문화재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민사회의 관심을 가장 먼저 부탁했다. 여론이 크게 조성돼야만 언론과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대구 읍성, 춘천 중도 유적 보호 운동을 사례로 들며 고대유적으로 가득한 창원과 경남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지역 시민사회의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언론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발굴 현장 설명회를 제치고 기업의 신제품 발표회에 달려가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지자체도 최근 문화재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등 개선 노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https://gnpssc.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106/60db10509c5fc8749627.png)
(2025년 건립을 목표로 추진중인 창원박물관 조감도/출처=창원시)
한편 창원시는 2025년 국내 최초의 산업·노동·역사 박물관 개관을 목표로 창원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경남 곳곳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도 앞다퉈 경쟁 중이다.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조차도 왜 개발 논리이자 생색 내기 같아 보이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아는 만큼 보인다. 저 먼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내 고장 박물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손쉽게 우리 지역에서 발굴된 아름다운 배 모양 가야토기와 원삼국시대 유물이라고 믿기지 않는 생생한 빛깔의 다호리 칠기를 보고 싶다. 지금 어디선가 소중한 유적 하나가 개발에 밀려 또 사라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고민은 끝내고 행동에 나설 때이다.
경남공익기자단=이빈 기자 (bini669@naver.com)
- 중생대에서 가야시대에 걸친 지역 역사문화 설명
- 개발논리에 치우친 지역 인식과 실태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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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는 29일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특강을 대면과 온라인으로 가졌다./촬영=이빈기자)
마산YMCA가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특강을 열고 지역 내 유적과 문화재의 소중함과 보존 필요성을 되짚었다.
29일 마산YMCA 청년관에서 열린 아침논단에서 김주용 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우리가 미처 모르거나 지나쳐온 지역의 유적과 문화재를 재치 있게 설명하면서 방치되고 훼손되 가고 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지자체, 시민사회, 언론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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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 정상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을 창원대박물관에서 실측하고 있다./출처=창원대박물관)
“무학산 정상에는 둘리가 살았습니다”
김 실장은 2014년 직원들과 등산을 하며 발견한 공룡발자국 이야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등산 중 직업병이 발동해 옛 암각문이나 비석을 찾다 중생대 호숫가 물결 화석인 연흔 무늬를 발견하고 혹시나 하고 발자국 화석을 찾다 결국 포기한 채 도시락을 먹을 만한 너럭바위에 오른 순간 초식공룡 발자국 10여 개를 발견한 것. 그것도 해발 761m 정상에서 말이다. 2008년 정병산에서 첫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가까운 대암산, 마산 제2금강산 등에서 잇달아 발견됐으니 창원은 1억년 전 둘리들의 천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적과 문화재는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의 무관심과 선입견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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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시대 뗀석기를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이 설명하고 있다./촬영=이빈기자)
“창원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창원의 역사에는 공룡 발자국처럼 비어 있던 페이지가 많다. 그 이유를 김 실장은 취약한 지역의 역사문화 기반체계와 전문인력 공백에서 찾고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숙련된 연구와 발굴 경험이 있는 인력이 지역에 없어 발굴은커녕 그동안 조사된 유적 내에서도 유물이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주남저수지 합산패총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을 확인하기 전까지 창원에서 신석기시대는 공백이었다. 구석기시대도 2014년 목포에서 전문인력을 초청해 가능성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오랜 조사 끝에 2021년 동읍 용잠리에서 구석기시대 중·후기로 추정되는 석기를 채집함으로써 비로서 공백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눈을 부릅뜨고 땅을 파 내려가는 지역의 역사문화 전문가들 존재하기에 언제부터 창원에 사람이 살았나요 물으면 이제 구석시시대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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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에서 발견된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 지석묘 유적을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이 설명하고 있다./촬영=이빈기자)
근대산업화의 도시 창원,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창원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공업단지, 계획도시 말곤 선뜻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를 이끈 고장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창원에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 가야 시대 유적과 고분군이 가까운 진동과 현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은 몇이나 될까? 김실장은 창원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현동에서 발굴된 가야 최고의 명품 배 모양 토기와 계획적으로 묘역을 조성한 진동리 청동기 지석묘 유적을 꼽았다. 원형 또는 네모반듯하게 호석(돌담)을 두른 지석묘는 규모와 형태면에서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 당장 물에 띄워도 좋을법한 배 모양 토기는 섬세함과 제작기술에 있어 당대 최고의 토기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야철 유적이 발견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살던 창원. 우리 고장 고대인들은 이미 지금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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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논리에 묻혀 훼손된 창원지역 문화재 사례/출처=창원대박물관)
“과연 우리는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까?”
어릴 때 우리는 문화재를 아껴야 한다고 배웠고 숭례문이 불탈 때 모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내 땅에 문화재가 발견된다면 과연 같을까? 김 실장은 질문을 던졌다. 문화재 주변 반경 200~500m 이내의 개발행위는 철저히 제한받는다. 또 문화재가 발견되면 땅 주인에게는 발굴의 의무가 주어지고 유물은 국가가 가져간다. 사랑의 대상이 나쁜 존재로 돌변하는 것이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경주, 김해뿐만 아니라 창원 다호리와 진동에서도 유사한 뼈아픈 진통을 겪었다.
김 실장은 경남 곳곳에서 개발과 성장이 최우선 되면서 많은 유적과 문화재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민사회의 관심을 가장 먼저 부탁했다. 여론이 크게 조성돼야만 언론과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대구 읍성, 춘천 중도 유적 보호 운동을 사례로 들며 고대유적으로 가득한 창원과 경남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지역 시민사회의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언론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발굴 현장 설명회를 제치고 기업의 신제품 발표회에 달려가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지자체도 최근 문화재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등 개선 노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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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건립을 목표로 추진중인 창원박물관 조감도/출처=창원시)
한편 창원시는 2025년 국내 최초의 산업·노동·역사 박물관 개관을 목표로 창원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경남 곳곳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도 앞다퉈 경쟁 중이다.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조차도 왜 개발 논리이자 생색 내기 같아 보이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아는 만큼 보인다. 저 먼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내 고장 박물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손쉽게 우리 지역에서 발굴된 아름다운 배 모양 가야토기와 원삼국시대 유물이라고 믿기지 않는 생생한 빛깔의 다호리 칠기를 보고 싶다. 지금 어디선가 소중한 유적 하나가 개발에 밀려 또 사라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고민은 끝내고 행동에 나설 때이다.
경남공익기자단=이빈 기자 (bini669@naver.com)